「 사진작가 이동식 살인사건

죽어가는 여인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한 싸이코패스. 」



일명 "죽음을 연출한 살인사건"이라 불리우는 이 사건은 1982년 12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보일러 배관공으로 일하던(아마추어 사진작가) 이동식의 애인인 피해자 김경희(당시24세)의 죽어가는 상황을 찍기위해 독극물을 먹인 엽기적인 살인사건이다.


사건 당시 해외토픽에서도 살인사건 소식을 전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불어 일본의 모 유명작가의 에세이집에서도 잘못된 창작열정을 비판하는 사례로 등장하기도하며 범죄관련 방송물에도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전에 모 공모전에서 새사진을 찍으려고 새들을 나뭇같지에 묶어놨다던가 본드로 붙여놨다던가 하는 류의 글을 본적이 있다. 입상까지 한 작품(?)이라고 했는데 당시에도 이런 삐뚫어진 촬영 방법에 대해 많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많은 비판을 받은것으로 기억한다.)


사진작가 이동식





※. 범죄기록


1982년 12월 14일 서울 구로구 호암산에서 산에서 놀던 아이들이 낙엽에 뒤덮인 여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신원조사 결과 시신은 이발소 면도사로 일하던 김경희씨로 밝혀졌고 시신 발견 당시 저항흔이 없어 단순한 독극물로 인한 자살로 경찰은 추정했으나 이상한점은 옷을 모두 벗고 있는 나체 상태였다는것과 낙엽으로 뒤덮여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는것이다


상식적으로 자살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한겨울에 야산에 올라가 옷을 모두 벗은 나체 상태로 독극물을 마시고 고통속에 몸부림치다 숨이 멎을때쯤 주변의 낙엽을 주섬주섬 모아 뒤덮었다는것 말이 되지 않는다.



이때문에 자살이 아닌 살인사건이라 생각한 경찰은 수사결과 특수절도 4범의 전과를가진 출소후 배관공의 일을 하고 있던 이동식을 검거한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가정환경에다 부모까지 사망해 고아로서 성장한 이동식은 넝마주이로 근근히 살다 우연한 기회에 사진에 취미를 붙여 사진에 빠져들게된다. 



나름대로 재능도 있어서 한국사진작가 협회 회원으로 가입도 되었고 개인전시전도 열었다고한다.(각종 사진 공모전에서 10여차례 입상한 기록도 있고 모 공모전에서는 닭은 소재로 찍은 사진이 은상에 입상되기도하는데 이 사진은 닭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이런 저런 사진을 찍으며 살던 이동식은 이렇다할 소재를 찾지못해 공모전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죽음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로 사진을 찍기로 한다.


대개의 살인마들이나 싸이코패스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죽음을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이며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전에 찍었던 닭이 피흘리며 죽어가던 사진도 그렇고 살인사건을 일으키는 싸이코패스들은 뭔가 기준이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것 같다.)



이와 같은 생각때문에 자신의 부인을 모델로 네크로필리아적인 요소가 담겨있는 사진을 찍기도 하나 실제 죽음이 아닌 연출된 죽음이라 생각해 이에 만족을 하지 못한다. 당시 이동식은 일본 누드집을 탐독하며 성과 죽음에 대한 삐뚫어진 이미지에 빠져들고 있었다.


(네크로필리아 - Necro(시체) + philia(사랑)의 합성어인 네크로필리아는 시체를 사랑하는 성도착증 환자라는 뜻이다. 네크로맨틱이라는 1987년에 만들어진 독일 영화가 있는데 정신건강상 별로 시청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검거후 이동식



그러던중 자신이 즐겨다니던 퇴폐이발소의 면소사로 일하던 김경희에게 출세를 시켜주겠다며 누드사진 모델의 제안한다.

그렇게 누드사진을 찍으며 둘은 연인사이로 발전, 그러던중 역시 촬영을 위해 산을 찾은 두사람.


누드촬영을 위해 탈의 전 날씨가 추우니 감기약을 먹고하자며 약을 건넸는데 사실은 감기약이 아닌 청산가리 였다,

김경희가 청산가리를 먹고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 치는 사이 평소 죽음과 성에 관한 사진을 찍고싶어했던 이동식은 21장의 사진을 찍는다.

이 후 숨이 끊어진 김경희의 옷을벗겨 누드사진까지 찍은후 은폐를 위해 낙엽으로 덮어놓고 자리를 뜨게된다.



시신 발견후 경찰은 부검과 김경희의 인맥도 관계조사등을 통해 이동식의 존재를 밝혀내기에 이르게되고 이동식의 집 지하 보일러실에서 증거가되는 필름과 노트가 발견되어 이동식을 검거하게된다..(대한민국 경찰 처음으로 프로파일링 기법이 적용된 첫 사건이다.) 확실한 물증을 기반으로 이동식을 검거한다.


경찰에게 범행을 추궁당하던 이동식은 처음에는 김경희가 자신을 스토킹 해서 홧김에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자백했으나 증거품인 사진을 분석하던 전문의가 "사진속 인물이 동공이 풀려있다, 시신 주변 낙엽과 빛의 변화를 고려해볼때 이는 죽어가고 이는 과정을 찍었다는"는 의견에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이후 구속된 이동식은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에 형량이 과하다하여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으나 전부 기각된뒤 1984년 2월16일에 사형확정판결, 그후 2년3개월이 지난 1986년 5월 27일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벌인 이동식은 서울구치소에서 사형당했다.



P.S : 조사과정에서 이동식 주변에 의문스럽게 실종이 된 여성이 21명이 있었고 전 처 역시 그가 살해 했다는 전처 가족들의 의심이 있었으나 위에도 나온것처럼 사건의 엽기성 때문에 해외토픽에도나오는둥 외신에 알려지자 소위 "높으신 양반들이" 나라망신 시키지 말고 얼른 수사를 끝내라는 압박이 있력 제대로 수사가 진행이 되지 않았다.





당시 신문에 나왔던 사진들, 모자이크를 했지만 신문에 시신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누가 사이코패스인지 참.


신문에실린 피해자사진



증거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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